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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 없이 쓰는 글 #1

부제: 서른 코 앞 흔한 개발자의 발자취

이 글은 '개발자 커리어' 와 관련된 주제로 출판사에 투고되었던 칼럼입니다. 출판사와 논의 결과 출판 예정인 도서와 컨셉이 맞지 않아 실리지 않았고, 대신 개인 블로그에 공개하는 글입니다..

해당 특정 출판사를 유추할 만한 내용은 블라인드 처리했습니다만 내용을 읽는데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평일 지하철에서의 퇴근길이었습니다. 멍하니 스마트폰으로 오늘은 인터넷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찾아보는데, 낯선 이메일이 한통 와있더군요. 발신이 ‘@@출판사’ 입니다. 출판사에서 나에게 연락 올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인가 하고 열어보니, 저에게 간단한 칼럼을 써달라고 합니다. 제 블로그의 포스트들을 인상 깊게 보셨다고 합니다. 무슨 칼럼을 써야 하나 확인했더니 ‘개발자 커리어’에 관련된 어떤 주제도 괜찮다고 합니다.

이제 겨우 회사 생활 3~4년차 개발자인 제가 감히 이런 훌륭한 책에 수준 낮은 칼럼을 써도 되나 고민이 먼저 들었습니다. 해당 도서 작가의 개인적인 팬이기도 하고, 신입 개발자 즈음에 읽었던 '@@@ @@' 역시 감명 깊게 읽었었습니다. 저보다 훨씬 경력 많고 좋은 경험을 가진 개발자분들이 정말 많았을텐데 부끄럽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 역시 평소 후배님들에게 이것저것 알려주기 좋아하고, 알려준 내용으로 후배님들이 성장해가는 것을 보면 뿌듯해하기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글이 @ @@@의 국내 신간 번역서에 첨부된다는 생각 칼럼을 써보겠다고 회신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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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90년대 초반생인 저는 컴퓨터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자아가 생길 무렵 개인용 컴퓨터(PC)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10대 때의 피처폰, 그리고 20대 때의 스마트폰을 거쳐 30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 어찌 보면 일생 내내 IT와 컴퓨터라는 전자기기의 발전사와 가장 밀접하게 함께한 세대이기도 합니다.

제 기억 속 처음 본 컴퓨터는 MS-DOS였습니다.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이었는데, 20대였던 외삼촌 방에서 처음으로 컴퓨터라는 친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컴퓨터의 모습은 지금과는 사뭇 다르게 눕혀져 있는 본체 위에 뒤가 툭 튀어나온 CRT 모니터가 올라가 있었습니다. GUI 환경이 아닌 운영체제였고 까만 화면에 커서만 깜빡이는데 초등학교 입학도 하지 않은 제가 무언가 할 수 있을 리는 없었습니다. 항상 외삼촌을 졸라 ‘라이언 킹’ 이나 ‘알라딘’ 같은 도스용 게임을 플레이하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삼촌도 도스 환경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은 아니었는지 mdir 을 통해 항상 게임을 켜주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 속 첫 컴퓨터의 모습. CRT 모니터와 MS-DOS (출처: https://www.vogons.org)

 어느 순간 외삼촌의 컴퓨터는 Windows 95가 설치되었습니다. 멋도 모르고 그림판 가지고 놀았던 게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제 개인 컴퓨터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가지게 되었는데, 10살 무렵 Windows ME 운영체제에 인텔 셀러론이 탑재된 삼보 컴퓨터였습니다. 살던 곳도 주거지역이 아닌 상가지역이라 주변에 또래 친구도 많이 없었고 외동이었던 저에게 집에서 혼자 심심할까 봐 크게 마음먹고 사주셨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아마 그때 제 첫 컴퓨터였던 셀러론 PC가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직업과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당시는 컴퓨터에 인터넷 연결이 당연시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PC에서 할 게 없으니 그냥 이것저것 눌러보고 괜히 본체를 뜯어서 안에는 어떻게 생겼나 구경해보고, 분해했다가 조립해보고, CD-ROM에 CD 두 장 넣었다가 고장 내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혼자 컴퓨터를 가지고 놀던 모습이 신기하셨는지 어머니가 대뜸 컴퓨터학원에 저를 등록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저는 드디어 인터넷을 접하게 됩니다. 이게 2001년 11살 무렵입니다.

 요즘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직군이고 장래 희망이지만 그 당시 누군가 저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저는 조금도 고민 하지 않고 ‘웹 마스터’ 라고 얘기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찌 그랬나 싶지만, 초등학교 4학년짜리가 컴퓨터 학원에서 혼자 앉아 나모 웹에디터나 포토샵, 무료 게시판 플러그인을 가지고 당시 유행했던 게임인 메가맨(록맨)X4 의 팬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의 제가 HTML을 알았겠습니까 CSS 나 Javascript를 알았겠습니까. 지금처럼 웹 표준이 있던 시절도 아니었기에 그냥 마우스로 찍찍 그어가면서 만든 결과물이 인터넷에 올라간다는 게 마냥 신기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건이 하나 터집니다. 여전히 집에 있는 제 컴퓨터에는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외삼촌의 컴퓨터에는 인터넷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외삼촌이 외출했을 때 외삼촌 몰래 인터넷을 하기 위해 외삼촌 방에 잠입하고는 했는데, 제가 무언가를 다운로드 받고 외삼촌 컴퓨터가 바로 바이러스에 걸려 먹통이 되어버립니다. 그 다음날 당연하게도 컴퓨터를 고장낸 범인으로 적발되었고 저는 외삼촌에게 정말 많이 맞았습니다.(약 20년 전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 당시 화폐 가치를 생각해보면 정말 엄청나게 비싼 컴퓨터를 날려버린 것이니 맞아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왜 그랬냐는 외삼촌의 물음에 ‘인터넷이 하고 싶어서..’ 라는 대답으로 가족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고 제 개인 컴퓨터에 인터넷을 넣어버리는 쾌거 역시 일으키고 맙니다.


하두 많이 맞아서 분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저 파란 화면을 쓰는 프로그램을 통해 무슨 게임을 다운 받고는 그만.. (출처: https://blog.naver.com/adonis5050)

 그때부터 거의 고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학교-컴퓨터-학교-컴퓨터의 생활을 이어가게 됩니다. 학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컴퓨터 학원도 진작 때려치웠는데 그때는 뭘 그렇게 한다고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웨스트우드의 녹스(Nox)라는 게임을 정말 오랫동안 했었는데 메모리의 Hex 값을 변조하는 방법을 찾아 게임 핵 쓰기. 용돈을 모아 동네 컴퓨터 가게에서 RAM을 구매하여 컴퓨터 업그레이드하기, CD 플레이어가 가지고 싶어 컴퓨터의 CD-ROM을 떼서 잘 때 듣는 CD 플레이어로 쓰기. 게임하기. 그렇게 점점 컴퓨터에 심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여 ‘컴퓨터로 밥 벌어 먹고사는 사람’ 이 되기 위해 고등학생 때 다시 컴퓨터 학원을 찾았습니다. 사실 중학생 때도 잠깐 어릴 때 다니던 컴퓨터학원을 다시 다녔는데, 그 당시는 정말 지방의 컴퓨터 관련 학원들이 힘들 때라 중간고사 치고 오니 학원이 사라져있고 그랬습니다. 아무튼 새로 등록한 학원에서는 전혀 다른 걸 알려줍니다. Visual C++ 6.0은 무엇이고, 정보처리기능사는 무엇인지... 그렇게 처음 C 언어로 프로그래밍을 시작했고, 생애 처음으로 어릴 적 MS-DOS에서나 보던 까만 화면에 Hello World를 띄우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간단한 자료구조, 알고리즘 등을 익히게 되었고, 기능사 자격증 취득과 정보올림피아드 예선에서 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역시나 대학 입시를 위해 컴퓨터 학원을 그만 다니게 됩니다.

(#2 에서 계속...)

2019/03/21 - [내맘대로/끄적끄적] - 흔한 개발자가 두서 없이 쓰는 글 #2

2019/03/25 - [내맘대로/끄적끄적] - 흔한 개발자가 두서 없이 쓰는 글 #3 (완)


프로필사진

Yowu (Yu Yongwoo)

그냥 지나가는 흔한 백엔드개발자423 느낌 입니다
우분투 데스크탑 개발 환경을 선호합니다
최근에는 vscode에 vim 모드 올려서 쓰고 있습니다
개발용 키보드는 역시 해피해킹 프로2 무각입니다
락 밴드에서 드럼을 꽤나 오래 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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