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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 없이 쓰는 글 #3 (완)

부제: 서른 코 앞 흔한 개발자의 발자취

이 글은 '개발자 커리어' 와 관련된 주제로 출판사에 투고되었던 칼럼입니다. 출판사와 논의 결과 출판 예정인 도서와 컨셉이 맞지 않아 실리지 않았고, 대신 개인 블로그에 공개하는 글입니다..

해당 특정 출판사를 유추할 만한 내용은 블라인드 처리했습니다만 내용을 읽는데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2019/03/18 - [내맘대로/끄적끄적] - 흔한 개발자가 두서 없이 쓰는 글 #1

2019/03/21 - [내맘대로/끄적끄적] - 흔한 개발자가 두서 없이 쓰는 글 #2

 군 전역 후 가입했던 정보보안 동아리는 국내에서 꽤 유명한 대학 정보보안 동아리였고 대회에서 수상에 여러 번 받은 실력 있는 해커 그룹이었습니다. 사실 1학년 때부터 들어가고 싶었지만, 연이 닿지 않았던 동아리였습니다. 스터디가 굉장히 빡쌔기로 유명했는데 약 반 년간 동아리에 몸을 담으면서 지금까지 배웠던 컴퓨터 공학의 모든 것들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C 언어와 어셈블리, 로우-레벨 프로그래밍 구조, 리눅스 시스템, 웹, 리버싱, 정보보안 등 정말 많은 것을 익히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이나 서비스에서 취약점을 찾는 것보다 직접 개발하고 만드는 것에 더 흥미를 느끼고 적성에 맞다는 것을 깨닫고, 반년 만에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비록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꿈꾸던 정보보안전문가의 길을 벗어나게 되었지만, 개발자에게도 보안 지식은 굉장히 중요한 역량 중 하나기 때문에 그때의 경험 역시 지금의 저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정보보안 동아리를 나와서는 평소 친하게 지냈던 동기들과 함께 대학교 창업지원센터를 통해 창업 동아리를 만들게 됩니다. 당시는 대학생의 창업 관련된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 많았을 때라 아무것도 몰랐던 대학생들이었지만 거대 IT 기업의 시니어를 멘토로 붙여주고, 비즈니스 모델 컨설팅을 해주는 등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만들던 서비스는 자체 승률 계산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스포츠 경기 예상 서비스' 였습니다. 대학생 5명이 모여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치열하고 고민하고 개발 방향과 구조를 생각하고 코딩해나가 베타 서비스까지를 만들어냈습니다. 물론 대학생 개발자로서 자신의 역량 부족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그 때 즈음부터 외부 개발 커뮤니티 활동을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기억 속의 개발 커뮤니티 오프라인 행사 첫 참석. 2014년. (출처: OSS 개발자 포럼)

 첫 개발자 커뮤니티는 'OSS 개발자 포럼' 이라는 페이스북에 존재하는 작은 개발 커뮤니티와 '생활코딩' 이었습니다. 서비스를 만드는 동안 막히는 점, 막혔던 점을 해결한 방법 등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의 이슈를 해결해주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활동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OSS 개발자 포럼에서는 방학 시즌마다 예비 개발자를 위한 2박 3일간의 캠프가 열리고는 했는데, 이때 처음으로 외부 개발자 행사에 참여하게 됩니다. 캠프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현업에 계신 개발자분들과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개발자 네트워크 사회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이후로 개발자 커뮤니티의 필요성과 참여의 재미를 조금씩 깨닫고 국내 '우분투 한국 사용자 포럼', '90년대생 개발자 모임 (현 9XD)’, ‘이상한 모임' 등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조금씩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국내 여러 분야의 개발자들과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자기 계발과 좋은 개발자로서의 방향성을 스스로 세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스타트업 얘기로 돌아와서 창업을 위한 도전은 1년도 되지 않아 무너지고 맙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그렇듯이 경험 부족으로 말미암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초기 멤버의 상태 변화와 이탈이 원인이었습니다. 창업은 무산되었지만, 이때의 경험은 실제로 작은 스타트업의 인턴이 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때가 대학교 3학년 2학기였습니다.

 인턴 개발자로 입사한 회사는 임베디드 하드웨어와 이를 기반으로 웹 서비스를 제공하는 20명 규모의 작은 IoT 스타트업이었습니다. PHP 개발자로 입사했고, 나중에는 업무가 확대되어 서버 인프라까지 담당하게 됩니다. 인프라로 업무가 확대되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대학교 복학 후에 리눅스 시스템에 미친 듯이 몰두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때 습득한 지식과 CCNA를 공부하면서 얻게 된 지식이 실무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입사했을 시기에는 회사 내에 아직 애자일 프로세스나 AWS가 도입되기 전이었는데, 제가 몸담고 있던 시기 동안 애자일 프로세스와 Redmine 과 같은 프로젝트 관리 툴 도입, AWS 클라우드 인프라 도입과 이전, Node.js 도입 등 신입 인턴 개발자로서 쉽게 경험하기 어렵지만 정말 귀중한 경험을 함께하게 됩니다.

 하지만 첫 회사에서의 커리어는 8개월 만에 끝나고 맙니다. 실제 현업을 겪어보니 스스로 공부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통감하게 되었고, 아직 마치지 못한 학업에 대한 제 부담감과 압박감이 있었습니다. 결국, 퇴사를 하고 학교로 돌아가게 되었고, 복학 후 2015년 8월. 대학교를 졸업하게 됩니다.

여름 졸업은 하지 않는 걸루.. 땀에 쩔어있는 사진 밖에 없네..

 8월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9월에 바로 다음 회사를 결정, 10월에 입사를 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성급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다양한 기회를 탐색했거나 졸업 전부터 구직에 대한 노력을 들였어야 했는데,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이제야 듭니다.

 졸업 직후 입사한 회사 역시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졸업 즈음에 다시 스타트업을 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기회를 찾을 것인지 고민이 있었는데,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이 고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예전에 블로그에 작성한 글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입사한 두 번째 회사는 가정 간편식(HMR) 을 O2O 앱 서비스로 제공하는 스타트업이었습니다.

 두 번째 회사는 Node.js 백엔드 개발자로 입사했습니다. 작은 스타트업이 대게 그렇듯이 인프라와 데이터베이스, API 개발 전반이 주 업무였지만 때때로는 웹 프론트엔드와 모바일 앱 개발까지 해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제가 개발팀에서 연차가 가장 높았기에 스크럼과 스프린트 계획까지 진행했어야 했습니다. 개발 프로세스에 대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하여 적용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진짜 고통은 업무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입사한 지 2개월 만에 회사는 자금 문제를 겪게 됩니다. 60명이었던 전체 직원 수가 20명까지 줄어들고, 8명이었던 개발팀은 저를 포함해 3명이 남게 됩니다. 그런 상황마저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저는 퇴사하지 않고 잔류하게 되었고 대신 경영 사정이 나아질 때까지 연봉 일부만 받고 나머지는 스톡옵션으로 지급한다는 임금삭감 동의서에 사인하게 됩니다. 이후 사정이 조금 나아서 개발팀이 5명까지 늘어났었지만, 근본적인 자금 흐름이 개선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2차 자금 위기를 맞습니다. 그 위기에서 개발팀을 2명만 남긴다는 통보를 받게 됩니다. 임금삭감 동의서에 사인한 후 1년을 더 버텼지만 저는 결국 퇴사를 결심하게 됩니다. 

입사한지 2달도 되지 않아서.. 실제로는 이후 상황이 더 좋지 않아져서 75% 로도 받지 못했다. 최악의 상황일 때는 한 20% 정도. 시간이 지났으니 그냥 좋은 경험으로...

상황으로만 봤을 때는 제 커리어 중에 가장 절망적인 지점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저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일반적인 개발자가 절대 겪어보지 못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의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개발 방향과 비즈니스 모델에 깊이 관여를 하게 되고, 개발자가 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심지어 판교역 앞에서 전단지를 돌리기까지 했었습니다. (그 때 얻은 별명이 '마발자', 마케터+개발자였습니다.) 그 때는 그저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 역시 퇴사 후 다음 회사를 선택하기 위해 면접을 다닐 때 저를 좋게 봐주시는 부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회사를 퇴사한 후에 다음 회사를 선택하는 데는 굉장히 시간과 노력을 들이게 됩니다. (이때의 면접 별로 느낀 점과 후기 역시 상세하게 기록해두고 블로그 포스트로 남겼습니다.) 결국 그렇게 선택한 회사가 지금의 회사가 되었고, 지금의 저는 제 커리어의 세 번째 회사를 무리 없이 잘 다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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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떠셨나요? 작성하다 보니 지금까지의 제 개발자 커리어를 모두 한번 되짚어보는 회고 형태의 칼럼이 되었습니다. 개발자로서의 방향성이나 팁은 '@@@ @@' 본문에 제가 전달 드리는 것보다 더 훌륭하고 상세하게 나와 있기에 저는 다른 이야기를 전달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었던 진짜 얘기는 "비록 별 의미가 없어보였던 모든 행동과 실패 뿐인 경험들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들이 언젠가는 다음 기회로 이어지는 발판이 되었다." 입니다. 제 시작은 단순히 외동이라 학교를 다녀온 후 집에서 할 게 없어서 컴퓨터랑 가장 많이 시간을 보냈던 그냥 초등학생일 뿐이었습니다. 그랬던 초등학생이 외삼촌 컴퓨터를 바이러스로 고장 낸 다음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인터넷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그 후로 흥미를 느껴서 이루었던 작은 흔적들이 모여서 컴퓨터 공학이라는 전공을 선택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중도 포기했던 부트 캠프와 취득 실패했던 CCNA 자격증의 네트워크 지식, 역시나 중도 포기했던 보안 동아리의 경험, 단순한 흥미와 MacOS 대체로 사용했던 리눅스 지식이 모여 백엔드 개발자가 되었습니다. 또 실패했던 창업 동아리의 경험이 인턴 개발자로서의 입사 기회를 열어주기도 했습니다.

 분명 앞으로도 꾸준히 실패하거나 중도 포기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이 제 경험이 되고 무기가 되고 커리어가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앞으로 나아갈 길이 까마득한 개발자이고 다음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저와 모두의 커리어를 응원합니다. 저 역시 계속된 실패로 힘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개발 커뮤니티의 모 선배 개발자분에게 넋두리에 가까운 메일을 보내고 회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굉장히 응원이 되었던 메일이라 그 일부분과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는 명언 한 구절을 끝으로 제 부끄러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생략) .. 사람은 언제나 실패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실패가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지금 실패라고 느끼는 것을 통해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경험하시고, 더 치열하게 공부하시고, 꼭 좋은 개발자로 성장하시길 바랍니다.

- 모 선배 개발자

지속적인 자기발전이 없다면
현재의 당신이 앞으로의 당신이 될 것이고,
당신이 될 수 있었던 사람과 당신이 비교될 때
고통은 시작될 것이다

-엘리 코헨

(29세 3월 25일까지의 기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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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사진

Yowu (Yu Yongwoo)

흔한 Node.js/Java 백엔드 개발자입니다
Ubuntu와 MacOS 데스크탑 개발 환경을 선호합니다
최근에는 vscode와 IntelliJ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vscode에는 neovim, IntelliJ는 ideaVim
개발용 키보드는 역시 HHKB Pro 2 무각입니다
락 밴드에서 드럼을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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