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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6개월 만의 회고 (2019.06~2021.12)

 그렇다. 이것은 2년 6개월 만의 회고글이다. 마지막으로 회고글을 작성한 것이 2019년이었고, 오늘은 어느새 2021년 12월 31일이다. 사실 올해 중순에 회고글 하나를 작성하려 했지만, 역시나 쓰다 말아서 임시 게시물 한복판에 처박아두었고, 오늘에서야 다시 처박아두었던 임시 게시글을 다시 꺼내어 작성한다.

사람 사는거 다 비슷한거 아닙니까?

어느덧 삼십 대가 되어버린 나, 정말 짜릿해

 2019년까지만 해도 20대였는데, 2020년에는 30대가 되어버렸고, 2021년에는 만 나이로도 빼도 박도 못하게 30대가 되었다. 요즘 회사 Zoom에서는 신규 입사자들 분께 21세라고 뻥치고 다니는데 (딱 한 명만 속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20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아무래도 고생은 고생대로 다했지만 그렇다고 삶이 딱히 나아졌던 기억이 없어서 더 그런가 보다. 반면에 30대 초입이 된 지금은 어느 정도의 경제적 자립이 이루어졌고, 20대 때 누리지 못하고, 경험할 수 없었던 것들을 조금 더 자유롭게 누릴 수 있게 된 점이 20대 보다 지금이 훨씬 낫다고 생각들게 한다.

2019년 12월 31일. 촛불 세개와 함께 서른을 축하받았습니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 나한테 20대로 다시 돌아갈래? 라고 물어보면 난 안 돌아간다.

Goodbye Sadness 2020, Hello Happiness.

 개인적으로 2021년 보다는 2020년이 훨씬 힘든 한 해였다. 2010년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갓 서울로 상경해서 이래저래 망나니처럼 살던 버릇이 서른이 되니깐 다시 튀어나왔던 걸까. 이곳저곳에 업보 잔뜩 쌓고 다니다가 그 업보가 한방에 터지기도 했고, 당시 재직하던 회사에서의 미묘한 신경전과 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그중에 가장 크리티컬 했던 것은 역시나 이사를 앞두고 살고 있던 전셋집에 집주인의 이슈로 가압류가 걸렸던 일이다. 하나만 해도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한방에 닥쳐왔고, 버티기만 하다가는 부러진다는 얘기처럼 결국 멘탈 바사삭으로 몇 개월간 항우울제 등등을 처방받기도 했다. 살이 한 달에 4~5kg씩 빠졌다. (지금은 다 원상복구 되었다.)

저 때 뺀 살을 유지했어야 했는데...

 약을 먹었던 기간은 길지 않았다. 한방에 닥쳐온 이슈들을 하나하나 해결해가며 약 3개월 정도 치료받고 나니, 더 이상 약에 의존하며 지내기는 싫어졌다.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한순간 약을 끊게 되었다. 다행히 지금까지도 별 다른 문제는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그 멘탈이 박살 났던 짧은 몇 개월간 나를 돌아보고, 문제에 직면하고, 스스로 끊임없이 회고하게 만들었던, 나름 귀한 경험이었다.

당시엔 퇴근하고 잠실한강공원가서 한시간씩 멍하게 쳐다보고 오곤 했다.

 약을 먹고 나서 깨닫게 된 점이라면 몸이 아플 때 병원을 찾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거나 정신이 아파도 병원을 가야 하는구나를 절실히 느꼈다. 가끔 주변의 고민이나 얘기를 들어주다가 "이건 아무래도 각인데?" 싶으면 진료를 받아보기를 적극 권장하며 설파하고 있다. 약을 먹어봐야 내가 지금 정상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게 된다. (비유하자면, 내가 조금이라도 다운되거나 처지려고 하면 약이 내 멱살을 잡고 다시 끌어올려주는 느낌. 내 기분이나 상태에 상관없이 사회생활은 유지해야 할 때 큰 도움이 된다.)

안동 촌놈 → 경기도민 → 서울시민에서 다시 경기도민으로

 스무살에 처음 상경했을 때는 경기도 부천의 대학교 기숙사에서 수도권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군대. 전역 후에는 다시 대학교의 원룸에서 8년을 살다가, 야놀자 사옥이 삼성역으로 이전함에 따라 나도 거주지를 서울시 신림동 투룸으로 옮겼다. 하지만, 나의 서울생활은 길지 못했다. 전세 계약 기간 2년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경기남도로 이사했다. 관악구, 특히 신림동 거주 환경은 나에게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이 더 많이 보였다. 밤 12시쯤 되면 술 취한 아저씨들이 길가에 드러눕기 시작하는데 어후...

돌이켜보면 정신 건강에 참 해로웠던 2년간의 신림 살이

 계속 서울에 붙어있을지, 경기도로 이사 갈지 꽤나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딱히 서울에 붙어있는 것에 대한 이점을 못 느꼈다. 단독가구 독거 청년이라 청약이나 행복주택에 희망도 보이지 않았고, 어차피 내가 이직하게 된다면 서울 강남권이거나 경기 분당권일 것 같은데, 경기도에서도 충분히 다닐만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서울의 후덜덜한 집 값이 엄두가 안났다. 월/전세 이사 때문에 정기적으로 스트레스 받기도 싫었고, 몸뚱이 하나 믿고 상경했는데 그 몸뚱이 하나 뉘일 곳 하나 없던 터라 최대한 빠르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 경기남도행을 택했다.

집을 살 수 있는 가장 싼 날은 오늘이다.

 결국 2020년 4월에 인생 첫 부동산 매매가 이루어졌고, 지금도 경기남도 어딘가에서 나름 만족해하며 열심히 재택근무 중에 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더 큰 집을 원하고...

야놀자 퇴사, 그리고 이직.

2019년 야놀자 송년 회식에서 죽어버린 나를 찍고 있는 팀장님을 찍고 있는 사진이다. 야놀자에서 찍힌 사진 중 제일 좋아한다. Photo by shinyoung

 2021년 2월. 야놀자에서 퇴사했다. 2018년 2월에 입사했으니 정확하게 만 3년 근속하고 퇴사하게 되었다. 정신 차려보니 벌써 퇴사한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퇴사 이후에 바라보게 된 야놀자는 본격적으로 상장 준비도 시작했고, 이래저래 투자도 세게 받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친정이 잘되는 것을 바라보는 마냥 묘하면서도 기쁜 감정이 든다. 구성원들과 이래저래 정말 정을 많이 붙였던 조직이라 지금까지도 남다른 애착이 남아있다.

2019년 가을. 팀 멤버 6명과 떠났던 말레이시아 여행. 근데 한명은 숙소에 몸져누었던.

 야놀자 CX개발팀에서 친했던 팀 멤버들끼리 작심하고 4박 5일 말레이시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아마 저 당시처럼 회사생활을 하라고 하면 이젠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순수(?)할 때 야놀자에 입사해서 팀원들과 깊게 교류했고, 조직에 강하게 애착을 느끼면서 지냈다. 이런 직장 생활을 또 할 수 있을까 싶다. 현재 시점에서 저 때 말레이시아를 함께 다녀온 팀원들은 모두 다른 회사에서 재직 중이다.

장비반납을 위한 야놀자 마지막 출근날. Photo by syeon

 친했던 멤버들의 이직 + 당시 이래저래 복잡했던 팀 상황이 겹쳐 나 역시 자연스레 이직을 생각하게 되었고, 2021년 1월 초 퇴사를 통보하게 되었다.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하기 위해서 대출 역시 빡쌔게 실행해둔 터라 딱히 쉬는 기간을 두지 않고 2월 말 퇴사, 주말만 쉬고 바로 2월 말 입사를 결행했다.

바랠대로 바랬던 출입증. 아직도 머리속에는 하니의 초특가 야놀자 송이 멤돈다.

 아무튼 야놀자 입사 전에는 "요우의 개발자 이직 대탐험" 이런 포스트까지 쓸 만큼 난리법석을 쳤지만 (무려 포스트의 반응도 매우 좋았던), 다음 회사로의 이직은 생각보다 심플했다.

저는 이제 Java 개발자입니다. 근데 면접은 Node.js로 본

이야.. 내가 네이버를 다와보네. 안동 촌놈 출세했네 출세했어.

 이직 전략 역시 심플했다. 이전의 이직 경험을 발판 삼아 결과 통보까지 오래 걸리는 회사와 오래 걸리지 않는 회사 두 개 그룹으로 나누어서 오래 걸리는 회사부터 진행했다. N사와 N사 계열사, K사 3군데를 보았는데, N사에 합격하게 되어 오래 걸리지 않는 회사 그룹은 진행하지 않고 바로 이직하게 되었다.

 야놀자에서 이직을 생각하기 한참 전부터 다음 회사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아무래도 20명 규모 스타트업 → 60명 규모 스타트업 → 야놀자 순으로 옮겨왔던 터라, 다시 스타트업에서 조직에 강하게 involve 되어 주도적으로 일을 하고 싶은 생각과 그래도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더 큰 트래픽과 더 큰 개발 조직에서의 경험을 쌓고 싶은 두 개의 선택지 가운데서 오랫동안 고민했다. "큰 회사는 가야 할 때가 있고, 갈 수 있는 때가 있다." 야놀자 당시 같은 팀의 시니어 개발자님이 해주신 조언이다. 나는 이 조언을 따라 좀 더 큰 회사로 이직했다.

 네이버에 입사를 하고 나서 조금 당황스러웠던 것 중 하나는 나는 분명 Node.js 백엔드 기술 스택으로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봤는데, 합격하고 입사하니  Java + Spring Boot 기반의 백엔드 개발로 배정받았다. 취업사기 한국에서 백엔드 개발자로 계속해서 살아가려면 언젠가는 자바와 스프링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는데, 이게 이렇게 풀렸다. 오히려 좋아.

2월 입사 이후 네이버 사내 Github에 찍힌 1,004개의 Contribution. 얼마 안되네..

 아무래도 Node.js 기반의 백엔드 개발을 해오다가 갑작스럽게 Java 기반으로 넘어오게 되어서 초반에는 몹시 애먹었는데, 지금은 Java 생태계에 나름 적응했다. Node.js lambda function의 괴랄함을 Java에서도 적용한다거나... Spring boot에서는 잘 사용할 일이 없는 Callable, Function 타입을 매개변수로 넘겨서 callback function으로 사용하는 패턴을 선보이며 기행을 일삼고 있다. (그리고 코드 리뷰에서 철퇴를 맞는다.)

 얼마 전 잠시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었을 때의 회식에서 지금 조직의 리더 분께 "저는 Node.js 스택인데 왜 저를 뽑으셨어요?"라고 물었고, 그에 대한 대답도 들었지만, 이건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른 글로 풀어볼까 한다.

COVID... 코로나... 후... 

 이 빌어먹을 역병 코로나19가 창궐한 지 벌써 2년이 되었다. 2019년 생애 최초로 말레이시아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나도 이제 해외여행 좀 다녀볼까! 엣헴!" 하고 같은 해 12월에 베트남 다낭을 다녀온 뒤 해외는커녕 국내도 잘 못 돌아다니고 있다. 이게 단순히 놀러 다니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 막 이직한 나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네이버로 이직한 지 1년이 다되어가는 시점이지만 약 60명에 육박하는 멤버 중 실제로 대면한 멤버는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사무실에 세팅해둔 장비들은 지금도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경기남도로 이사 오고 난 후, 네이버로 이직하게 되었고, 집에서 회사까지 차로 15분 거리지만 가급적 재택근무 권장으로 사무실 출근 횟수가 1달이 될까 말까 한다. 당연히 처음 팀에 합류하고 나서도 애로사항이 많았는데, 아무리 다수의 이직 경험(?)이 있던 나라고 해도, 풀 재택근무 상태에서 낯선 환경 + 낯선 업무 + 낯선 기술의 새로운 조직에 빠르게 합류하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노세 노세. 한살이라도 더 어릴 때 놀러다니세.

 온라인에서 백날 떠드는 것보다는 일단 만나서 떠들면서 업무 파악하는데 특화된 오프라인형(?) 인재인데, 정말 정말 낯설었다. 물론 이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이 시국에 이직한 모든 직장러들이 겪고 있는 문제다. 무엇보다도 그린팩토리 지하 식당의 2천 원짜리 밥을 못 먹는다는 게 너무 아쉽다. 나와 같은 독신 자취남에게는 최고의 혜택인데 말이다.

 아무튼 이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방랑벽이나 역마살이 있는 건지 한 번씩 밖으로 꼭 나돌아 다녀줘야 풀리는 게 있는데, 이래저래 제약이 생겼고, 결국 나는 안전하게 나돌아 다니기 위해 차를 질렀습니다(?)

감가상각에 정 붙이고 싶지 않아서 차에 이름은 짓지 않았습니다.

아반떼 CN7 1.6 인스퍼레이션 아마존 그레이 색상

 차를 사야겠다 결심하게 된 경위는 심플하다. 경기남도로 이사 오고 난 어느 날 야놀자로 출근하기 위해 집 앞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30분 동안 버스가 오지 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이 시간대면 차로 30분 만에 회사에 벌써 도착했을 텐데!" (는 나의 착각이었다) 그날로 차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국민 첫차인 아반떼를 마이너스 통장 일시불로 질렀다.

 없으면 이래저래 불편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는 게 자동차란 녀석이다.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차가 없었을 때의 나의 활동 반경은 지하철 역을 따라서 결정되었지만, 차가 생기고 난 뒤로는 주차가 가능한 어디던지 활동 반경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이랄까. 2020년 11월에 차량을 인도받았고, 1년 1개월이 지난 오늘 시점에 약 15,000km 정도 운행했다. 평소에 가볼 만한 곳을 지도에 핀 꼽아놓고, 주말이나 시간 날 때 휙 다녀온다.

네이버 지도에 저장해둔 "요우 리스트". 물론 다 가보지는 않았다.

2022년 ㅎㅇ

2022년에도 우리 존재 화이팅. Photo by katatonicboy

 2020년은 고통과 함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주어졌던 한 해였고, 2021년은 전년도를 발판 삼아서 조금 더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시간을 가졌던 한 해였다 생각한다. 2022년에는 딱히 세워둔 계획이 없다. 무언가가 바뀔 것 같은 느낌은 들지만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단 인간적으로던 업무적으로던 아직은 좀 더 숙성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하기에, 내 사람들 챙겨가며 스스로를 조금 더 푹 담가볼 생각이다.

이 포스트를 보신 모든 분들의 가문에 무한한 영광과 새해복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이 포스트를 1월 1일 0시 전에 마무리할 생각이었지만, 쓰다 보니 0시가 넘어버렸다. 그럼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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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wu (Yu Yongwoo)

흔한 Node.js/Java 백엔드 개발자입니다
Ubuntu와 MacOS 데스크탑 개발 환경을 선호합니다
최근에는 vscode와 IntelliJ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vscode에는 neovim, IntelliJ는 ideaVim
개발용 키보드는 역시 HHKB Pro 2 무각입니다
락 밴드에서 드럼을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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